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 (문단 편집) === 실패한 반격 === 하이티에서의 전투 이후 쩐의 군사들은 티엔즈엉과 쯔엉이엔(長安)에 주둔했다. 하지만 원의 군대가 곧 도착했고 비슷한 시각에 반끼엡에 있던 쩐 구옥뚜안이 1,500여척의 배를 이끌고 도착했다. 한편 쩐 구옥뚜안의 부장 중 하나인 팜 응우라오(范 五老)는 낭산을 포함한 남방의 빈빈(永平) 일대에서 끊임없이 기습을 가해 원나라 군대에 피해를 주며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원의 장수 아리크 콰야는 이런 뒤집혀가는 정황을 상세히 기록해 정찰병 편으로 황제 쿠빌라이에게 보냈다. 군을 규합한 이후 쩐 인종은 1285년 3월 10일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홍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리냔(里仁) 일대에서 원나라 군과 격돌했으나 원나라 군의 강한 저항에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1285년 2월 말에서 3월 초, 원의 장수 쉬게튀의 군대는 보찐(布正)을 공격한 뒤 응에안으로 진격했다. 쩐 냐두얏은 최선을 다해 막아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퇴각해야 했다. 쉬게튀는 1만의 군대를 보내 타인호아(淸化)를 공격했다. 3월 9일, 예전에 원에 항복했던 쩐 끼엔이 응우옌 군을 이끌고 베보(衛布)를 급습하면서 쩐의 장수인 응우옌 탓텅(阮 悉統)과 딘싸(丁車)를 사살했다. 다이 비엣의 총리였던 쩐 꽝하이는 분노했고 쩐 끼엔을 죽이기 위해 군을 몰아 원나라 군을 공격했으나 되려 반격을 당해 추가로 2명의 장수를 더 잃는 피해를 보고 말았다. 항복한 쩐 끼엔이 원나라 군을 이끌며 사납게 공격했기 때문에 결국 쩐 군은 응에안과 타인호아를 탈환하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되었다. 쉬게튀는 타인호아로 진격했고 쉬게튀의 아들인 바크지아노와 한인 출신의 장수들을 모두 총사령관 토곤의 군에 합류 및 배치시켰다. 이 시기 쩐 태종의 아들 중 하나이자 쩐 인종의 삼촌이기도 했던 소국왕(昭國王) 쩐 익탁(陳 益稷)이 온 일가 친척들을 모은 뒤 원나라 군에 투항하였다. 쿠빌라이는 기뻐하며 그를 안남국왕(安南國王)으로 임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